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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전태일 - 영원히 잊히지 않는 이름 전태일

책 그리고 감상문

by 짱꿀라 2021. 1. 6.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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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전태일 - 영원히 잊히지 않는 이름 전태일

 

 

전태일. 이름 세 글자.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러본다. 그리고 나직이 외쳐본다. 그의 이름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대한민국 이 땅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큰 외침과 울림을 주고 간 영원히 꺼지지 않을 행복한 사나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육체를 불태우기 직전까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와 아픔을 같이 나누며 성자다운 삶을 살다간 전태일. 노동자들의 가슴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이름 석 자로 남아 있다. 젊은 나이로 1960, 1970년대의 노동현실을 알리려한 그는 지금 노동자들의 스승이자, 부모로 각인되어 있다. <사람 전태일 - 왜 전태일인가>를 쓴 작가 송필경도 전태일을 숭고하다고 평가했을 정도였으니까. ‘숭고라는 단어에는 존엄하고 거룩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 말은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가? 최고 높은 찬사와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의 찬사와 존경쯤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글의 제목도 행복한 사람 전태일이라고 붙인 것이다.

 

"그가 시시포스를 알았든 몰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가 곧 시시포스였기 때문이다. 현실의 조롱과 냉소, 노동 구조의 권력이 지배하는 부조리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바치려는 그의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뼈저리도록 절절하다. 세상을 떠나고 싶어 떠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떠나야만 하기에 떠나고 떠나지 않을 수 없기에 떠나는 것이다. 끝없이 굴려 올려도 덩이가 목적지에 올려지지 않자 전태일은 자신이 덩이가 되고자 했다. 스스로 불타고 불덩이가 되어 비참하고 고단한 청계천 섬유 노동자들을 환하게 비추는 도구가 되고자 했다."(p.229)

"전태일 정신(사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어린 여성 노동자를 향한 연민이었다. ‘어린’, ‘여성’, ‘노동자’란 세 단어의 조합은 우리 사회에서 힘없고,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모든 가난한 약자를 상징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무시당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무지렁이로 천대받던 젊은 남성 노동자가 사회의 약자, 특히 어린 여성에게 보낸 ‘연민’을 칸트는 분명 숭고하다고 했을 것이다."(p.13)

"전태일의 아름다운 삶과 맑은 영혼 역시,/우리 의식 안에 활발하게 살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이는 우리 시대가 받은 축복의 기적이고 신화다./단 깨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축복이다."(p.18)

 

위에서 세 개의 문장을 인용했다. 인용된 문장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열사 전태일 선생의 이름이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지 이유를 알 것이다. 첫 인용 문장 속에 스스로 불타고 불덩이가 되어 비참하고 고단한 청계천 섬유 노동자들을 환하게 비추는 도구가 되고자 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 인용한 문장에서는 어린 여성 노동자를 향한 연민. 즉 다시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를 위할 줄 아는 사랑의 마음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문장에서는 전태일의 아름다운 삶과 맑은 영혼이 아직도 우리 의식 속에 활발하게 살아 움직인다고 말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 시대가 받은 축복의 기적이고 신화라고 까지 쓰여 있다. 이 정도의 평이라면 행복한 사람 전태일이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람 전태일 - 왜 전태일인가>에서도 여러 유명인사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신학자 안병무는 우리 시대의 예수라 불렀고, <전태일 평전>의 저자인 고() 조영래 변호사는 그의 죽음을 인간선언이라 했으며, 어느 철학자는 가장 완전한 삶을 산 혁명가라고 지칭했다. 또한 사회운동가 함석헌 선생은 전태일 열사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와 함께 활동한 동료들과 후배들은 친구나 오빠라 부르고 전태일 열사의 뒤를 이어 노동운동을 한 후배들은 동지라고 했다. 지은이도 나치 공포정치에 저항한 독일의 천재 신학자 본회퍼 베트남의 호치민과 꽝득 스님, 쿠바의 마르티와 카스트로, 체 게바라 같은 위대한 혁명적 지도자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처럼 전태일 열사를 존중하고 존경했다. 아니 사랑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추천의 말에서도 지은이는 아마 그는 전태일을 지독히 사랑하는가 보다”(p.5)라고 표현했다. 지독히 사랑을 받는 존재란 매우 행복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노동자들을 위해 그의 몸은 산화되었지만 그는 인간 자체를 사랑한 젊은이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말이다.

 

글을 맺으면서 전태일의 삶을 자세히 느껴보기 위해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노동자의 어머니 - 이소선 평전>을 함께 읽었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와 영원한 벗이고자 했던 조영래 변호사의 평전(<조영래 평전>)도 함께 읽어 보았다. 한 장 한 장 이 책들을 넘기며 전태일 열사, 조영래 변호사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께서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남긴 귀중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다.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라.

 

 

2021. 1. 6.

늦은 새벽에

 

덧붙이는 말

<사람 전태일 - 왜 전태일인가>라는 천천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 송필경이 본 전태일 열사는 사람 자체를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름다운 숭고한 휴머니스트였다고 했다. 그가 왜 이렇게 명명(明明)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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