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읽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 여타 다른 소설들에 비해서 소설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힘들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 소재들이 곳곳에 있다 보니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이 무엇인지 잡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전부터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었다. 접해보긴 했지만 이 주제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았다. 즉 생경하다보니 나의 한계도 있었음을 밝힌다.
가령 여성들의 몸을 학대하는 것이라든가, 인간이 먹는 것을 전부 칼로리로 계산한 것이라든가, 릴리와 로즈의 나이와 몸무게가 소제목처럼 나타난 것 등이 새로워보였다. 기존 소설에서는 보지 못한 글 전개방식이라고 할까. 다양한 방법으로 소설을 전개하는 것은 저자의 특권인지라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얼떨떨했다. 그러다보니 책을 천천히 읽어야 했고 반복적인 읽기가 되었다.
거식증1) : 의학적으로는 신경성식욕부진이라고 하며, 사춘기나 청소년기에 증세가 나타나기 쉽고, 특히 젊은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비만을 두려워해서 절식이나 감식을 하는 중에 거식증에 빠지는 경우도 있으며, 신체적 성숙을 거부하거나 섹스를 기피하는 심리 상태에 의한 경우도 있다. 한편 과식증은 스트레스나 불안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아무리 먹어도 식욕이 멈추지 않는 충동적인 다식증으로, 욕구불만이나 공허감을 음식으로 채우려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정신의학적인 진단 및 치료와 함께 신체적인 간호도 중요하다. |
첫째로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단상은 거식증이 인간들에게 걸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거식증은 이 소설에서 말하는 ‘섭식장애’라는 것인데 주인공 로즈와 그의 주변사람들이 하나같이 섭식장애를 갖고 있다. 이것은 음식을 먹지 않고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행위인데 이 현상이 소설 전반을 채우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섭식장애를 소설 인물들에게 대입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로즈, 제미마 게이츠와 그와 같이 했던 프로아나 맴버들(로런, 플이), 시설에서 로즈가 만난 마른 여자들 즉 캣 미첼스, 세라, 마른 남자 제이램, 인스타그램과 날씬, 날씬, 이라고 외치며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사업을 하는 라라 백스.
위에서 거식증을 설명한 부분에서 ‘욕구불만’이나 ‘공허감’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즉 빈 부분을 채우려는 행위를 말하는데 소설에 나온 섭식장애를 가진 등장인물들은 전부 가슴속 상처를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릴리와 로즈다. 이들의 선택은 섭식장애였다. 쌍둥이 자매들이 취한 행동은 반이성적인 행동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행위인 것이다.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여줌으로 자신을 봐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자매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이들은 사랑과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든 채우려했을 것이다. 이들이 취한 행동은 말 그대로 관심과 사랑을 채워달라는 것이었다.
"일란성쌍둥이 자매 로즈와 릴리의 몸은 청소년기를 기점으로 양극단을 향한다. 극단적 절식을 택한 로즈, 극단적 폭식을 택한 릴리. 두 사람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뒤표지에 나온 문구)
둘째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정상적인 가정에 대해서다. 아울러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릴리와 로즈의 가정을 살펴보자. 아버지와 어머니, 릴리와 로즈. 4명으로 구성된 가족이다. 아빠와 엄마는 이혼을 한다. 그리고 엄마는 재혼을 한다. 단락한 가정을 꾸리지만 음주운전을 한 차에 치어 죽고 만다. 아빠는 이혼 후 직장을 다니다가 구조조정을 당해 직장을 잃는다. 로즈와 릴리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식이 어떻게 커 가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다. 무심한 보모다. 재혼한 엄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행복이 중요했던지 재혼한 가정에만 애정을 쏟는 듯했다. 쌍둥이 자식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릴리와 로즈는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삶이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이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느껴진다. 릴리는 극단적 폭식으로 나타났고 로즈는 극단적 절식을 했다. 왜 쌍둥이 자매는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는지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작품이었다. 정상적인 가정이었다면 일란성 쌍둥이 자매는 자신의 몸을 학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쌍둥이 자매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관계도 잠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로즈의 인간관계는 마른 여자들과의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굶주림으로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자들. 제미마 게이츠, 로런, 플리, 시설에서 만난 캣 미첼스, 세라, 마른 남자 제이램과의 관계가 형성이 되었다. 이들은 인간형성관계에서 실패한 자들이다. 릴리의 인간관계 형성도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없다. 청소년기와 대학생 직장생활에서 형성했던 인물들이 비정상적인 관계 형성이었다. 특히 가정을 갖고 있었던 필과의 관계는 비정상적인 인간관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제미마 게이츠의 인간관 형성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이 여성도 로즈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사람이었고, 가정에서의 형성관계도 좋지 못한 편이었다. 가정구성원들로부터의 관계가 흐트러지다보니 자기 자신을 망가트리는 일에 열중을 했던 것이다. 정상적인 가정의 인간관계가 형성되었다면 거식증과 같은 병은 이들에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멸을 향해 간사람, 자기 자신을 망가트림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고 죽었던 사람. 캣 미첼스와 제미마 게이츠의 친구 로런이었다. 소설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
자연스럽게 세 번째 질문의 단상이 나온다. 병에 걸린 인물들이 과연 회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다. 회복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아봐야 할 것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관계의 회복과 삶을 계속 이어나가려는 희망이라고 보인다. 로즈가 선택한 극단적 절식, 거식증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시설로 들어왔지만 그곳에서도 어느 시점까지는 자신의 병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시설에서 만난 마른 여자들과의 관계는 어쩌면 불완전한 관계, 희망이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시설을 퇴소해야겠다는 이유는 릴리를 필 브라이트에게서 구하겠다는 것이었겠지만 정작 퇴소한 이유는 로즈 자신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켓이 죽은 후 다시 로즈는 시설을 방문한다. 켓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곳에서 세라와 나눈 이야기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멈춰야 해.” 세라가 작별의 포옹을 해주자 내가 속삭인다. “너 자신에게 이런 짓 하지마.” “언니가 그만두면 나도 관둘게.” 세라가 속삭여 대답한다. 우리는 몸을 떼고 서로를 응시한다. 한 여자와 그 여자의 반영. “난 그만둘 거야.” 내가 말한다. “난 꼭 그만둘 거야. 우리는 캣처럼 끝나진 않을 거야. 난 관둘 수 있어. 꼭 해낼 거야.” 진심이다. “난 꼭 해낼 거야.” 세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린 해낼 거야.”"(p.493)
로런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제미마 게이츠도 자신의 몸을 학대한 것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자기 자신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로즈와 나눈 대화 문장을 살펴보자. 로즈와 제미마의 관계는 회복이 된 듯하다. 화해와 용서를 통해서.
"“미술사.” 밈은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반짝반짝 눈을 빛낸다. “너무 마음에 들어. 뭔가에 애정을 품는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꼭 사람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자신의 내면에 있는 뭔가를 의미하는 거야. 아마도 린의 죽음이 내가 죽어가는 걸 멈춰주었겠지만, 나를 계속 살게 하는 건 결국 나였어. 어느 시점엔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 “너한텐 참 잘된 일이야. 밈.” 이건 진심이다. “너 진짜 좋아 보여, 사람 같아 보여. 진짜 여자 사람 같아.”"(p.519)
"“그제야 나는 깨달았어. 네가 스스로 시설에 들어가고, 회복을 결심하고, 그런 소식이 나를 깨닫게 만들었어. 모든 건 내 결정이구나. 오로지 나한테 달렸구나, 하고. 나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 모임 멤버들도 아니었어. 아는 여자들도, 친구도, 가족도 그 무엇도 소용없었어. 아니, 그렇게 할 사람은 나뿐이었어. 그래서 나 자신에게 말했지. ‘밈, 리즈가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린도 할 수 있었을 거야. 우리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야 돼.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p.521)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릴리도, 세라도, 로즈도, 제미마도.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품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다시 삶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정상적인 삶의 세계로 들어온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회복을 뜻하는 것이다. 캣 미첼스처럼 자살을 했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진 것이다. 정상적인 삶의 세계로 돌아오도록 도움을 준 사람의 역할도 중요했다. 제미마와 그레이스다. 여성들의 ‘연대’다. 문제해결은 연대를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도 <마른 여자들>에서 보여준 것이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인 성으로 인한 모든 차별을 부정하며 성평등을 지지하는 믿음에 근거를 두고, 불평등하게 부여된 여성의 지위·역할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여성운동”2)이라고 간단히 정의하고 있다. 저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몸의 이미지, 퀴어, 유해한 다이어트 문화 그리고 자매애, 사랑, 우정의 힘을 탐구하는 어둡고도 예리한 소설”(p.618)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페미니즘의 바탕 위에서 전개된 이야기다. 여성이 주가 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그 전의 소설은 남성성을 강조한 소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남성을 강조한 소설을 벗어나 여성성을 강조하는 소설이 앞으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2021. 8. 8.
무더운 여름에
한편의 새로운 소설을 읽고 쓰다
붙이는 말
근본적이고 주체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여성 작가 데뷔 작품을 창비에서 소개하고 있다. 새롭고 참신한 시도라고 보인다. 첫 소설 <베이비 팜>과 두 번째 소설 <마른 여자들>을 읽어보면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지 눈치를 챌 것이다. 특히 남성들에게 시사해 주는 점이 많은 소설이다. 짜증나고 무덥고, 무거운 기분이 전환될 것이다.
1) 출처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rts02g005
거식증
비만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해 먹는 것을 거부하는 증상. 의학적으로는 신경성식욕부진이라고 하며, 사춘기나 청소년기에 증세가 나타나기 쉽고, 특히 젊은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100.daum.net
2) 출처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3p2199a
페미니즘
모든 성별(젠더)은 평등하다는 이념.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사상과 이론이 존재한다. '여성'이라는 뜻의 라틴어 femina에서 유래했다. 생물학적인 성으로 인한 모든 차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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