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책 그리고 감상문

by 짱꿀라 2021. 5. 24. 00:08

본문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올해는 노동 관련 책을 2021년부터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첫 번째 책은 노동운동의 선구자였던 전태일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라고 할까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만난 책이 은유 작가가 쓴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죽음>, 세 번째로 만난 책은 주간지 시사인을 읽다가 만난 허태준 작가의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올해는 이상하게도 노동 관련 책이 손에 잡히게 되었다.

 

노동관련 책을 일부러 피한 것이 아니라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더 자세하게 양심적으로 고백하자면 노동에 대한 나의 의식이 굉장히 수준이하라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의 저자 허태준씨에게 미안함이 들 정도였다. 말하자면 나도 노동자인데 노동의식에 대해서 안일한 생각을 갖고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이 무척 미안했다.

 

또 한 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미안함은 너무나 편하게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직업을 가졌고,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에 나에게 또 한 번 실망감이 밀려 왔다. 나는 고등학교 때 지은이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경제적 형편은 접어두고, 그냥 공부만 열심히 했다. 일단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그 다음엔 일류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사회생활을 해서 최고 자리에까지 올라가는 것이 꿈이었다면 꿈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해왔다.

 

신문기사나, 뉴스에 노동에 관한 기사가 뜨면 무시해버리기 일쑤였고, 특히 산업현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기사에는 전혀 동감하지 않았고, 눈조차 돌리지 않았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까지 생각했을 정도니 나의 노동의식은 밑바닥이었던 셈이다. 지금껏 엘리트 의식에 찌들어있는 나를 보면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지은이가 중학교 때 가정형편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산업현장으로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했던 그 마음을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어떡하면 돈과 권력, 명예를 획득할지 이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온통 꽉 찬 것 같았다. 지은이는 생존을 생각했다면 나는 출세를 쫓았던 것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송스럽고’, ‘송구하기만 하다. 이 책을 접하면서 내가 걸어왔던 삶의 모습들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학생신분으로 학년이 다 끝나기도 전에 산업현장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던 지은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맨 처음 현장실습생을 거치고, 병역을 대체하기 위해 같은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37개월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심정은 어떠했을지. 나는 그만한 나이에 편안히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했던지, 신문을 봤던지, 책을 봤던지, 학교 교정에서 동료들과 학교 교정 한 곳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지은이가 겪었던 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심정을 지은이는 질문형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직접적인 표현은 아닐지라도.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처럼 열아홉 살부터 일을 시작했을까.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돈을 벌어야 했을까. 왜 돈을 벌어야 했을까.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했을까. 불안했을까. 서러웠을까. 퇴근 후에는 뭘 했을까. 공부를 했을까. 힘들진 않았을까. 뭘 좋아했을까. 가족은, 친구는, 애인은 있었을까. 그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새벽 복도 끝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은 안녕한지, 나는 정말로 물어보고 싶었다."(pp.22~23)

 

경제적인 형편으로 빨리 나가 돈을 벌어야 했고, 사회인이 되어야 했고, 꿈과 희망을 버려야했던 이들. 저자는 이들을 경계인이라고 불렀다. 경계인. 이쪽에도 포함되지 않고, 저쪽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이들. 경제적인 대접은커녕 사회적인 대접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청년노동자들. 걸핏하면 산업현장에서 들려오는 청년노동자들의 죽음은 이 세대들이 어찌 받아들어야 할지.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해서 나는 가끔, ‘사건이란 용광로에 빠진 이름을 비춰보고는 한다. 매년 산업 현장에서 꺼져가는 2,000여 명의 이름.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 한 304명의 이름. 때로는 별자리가 되어 누군가의 미래를 밝히는 이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가까웠던, 숫자가 표현하지 못한 삶의 질량을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매일같이 마음이 무거워지는지도 모르겠다."(pp.252~253)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 2017년 제주 현장 실습생 사망하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2021년 평택항에서 청년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사고가 일어났다. 끊이지 않는 사고에 대해서 저자는 눈을 감지 않고 글을 써서 알렸다.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동감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서로 껴않아 주웠고, 나누었다. 나는 무엇을 했는지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경계인으로, 청년노동자로 지금도 현실과 직시해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저자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미안하고, ‘죄송하고, ‘송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다. 나이 몇 살 더 먹고, 인생 몇 십 년 더 산 어른으로서 해줄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도 애처롭고 허망할 뿐이다. 노동자로, 노동자들의 아픔과 슬픔을 연대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에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2021. 5. 23.

늦은 저녁에 글을 남긴다.

 

붙이는 말

지금도 청년노동자 살아가고 있을 허태준 작가는 자신의 꿈을 찾았고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지은이와 같은 청년노동자들, 꿈을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노동현실에 대해선 자세히 쓴 글은 아니지만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점들을 정리해서 쓴 산문형식의 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 것이 아주 좋았다. 일독을 권해본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