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시간을 그리다>를 읽으면서 골목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품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개인의 추억을 물론이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골목은 기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골목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과 집이 있는 곳이라면 골목은 존재한다는 것을. 골목은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을 보듬고 품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할까. 아침에 일어나 일터로 갈 준비를 끝마치고 문을 나서게 되면 골목을 통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질 못했다. 대문을 나서면 큰길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골목을 지나가야만 한다. 주차된 4대의 차 골목 한편에 사람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골목을 빠져나가기 전 80평 정도의 공터가 있는데 몇몇 집에서 공동으로 상추, 토마토, 감자, 오이, 가지 등등 야채 같은 것을 심어 기른다. 수확을 하면 이웃끼리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이렇게 골목은 나의 삶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의 삶까지도 품고 있다. 골목은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통로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이 살아간 흔적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흔적들을 전부 기록하고 담는 것이 골목이다.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나도 반평생을 살아왔다. 새털같이 많은 날들을 골목과 함께 했다. 골목은 친구 이상이다. 골목은 가족과 같다. 자신의 삶과 같이 해온 친구, 가족이 바로 골목인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10개의 골목길에는 어떤 사람들의 삶들을 품고 있을까? ‘골목과 함께한 기억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여있다. 도대체 작가 정명섭씨와 김효찬씨는 어떤 이야기들 풀어놓을지 매우 궁금하다.
"골목길에서 낯선 것과 마주친다는 것은 익숙치 않은 일이다. 우리에게 골목길은 늘 익숙하고 친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골목길은 외국에서 건너온 기억과 흔적을 아낌없이 품었다. 그래서인지 중화거리라고 부르는 이 골목을 걷는 게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p.26)
"전골목을 비롯한 광장시장의 골목들은 그동안 다녔던 서울의 다른 골목과는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사람이 오가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본질은 같았다."(p.57)
첫 번째 골목 소공동과 명동, 광장시장, 해방촌, 세운상가, 이화 벽화마을, 충무로 인쇄골목, 문래 창작촌, 동묘 벼룩시장, 락희거리, 피맛길까지 10개의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에 속에는 매우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소공동과 명동에는 근대 청나라와 일본 사람들의 얘기가 상당히 들어있다. 청과 일본의 세력다툼,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거리, 중국 대사관 거리 등 중화거리 풍경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중화거리는 한글로 된 간판을 찾기 힘들 정도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의 흔적까지 남아 있다. 이렇게 소공동과 명동은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삶의 흔적까지도 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또 하나의 재미는 시장의 골목길까지도 소개를 하고 있다. 광장시장, 신흥시장, 동묘벼룩시장 등등. 지은이가 말했듯이 이곳은 ‘치열한 삶이 오가는 곳’이며,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소개한 10개 골목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매우 눈에 익은 세 개의 골목길이 나온다. 세운상가, 이화 벽화마을, 피맛길이다. 세운상가. 이곳 하면 불법 복제한 음란물 테이프와 짝퉁 전자제품을 살 수 있는 곳. 이 골목 편을 읽으면서 이곳을 즐겁게 거닐던 때를 생각해봤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서울에 볼일이 있을 때면 이곳에 들러 주위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높게 솟은 건물들, 상가들이 넓은 지역에 펴져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곳도 재건축한다는 말이 떠돌긴 했지만, 재건축은 하지 않았다. 재정비를 통해 카페거리가 조성하면서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탈바꿈하였다. 이화 벽화마을. 이곳이 생기고 두 번 정도 가볼 기회가 있었다. 이곳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 관광지가 된 뒤로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문장을 인용해 본다.
"반면, 해결하지 못한 문재점 역시 명백하게 느낄 수 있었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투어리스피케이션은 거주지가 관광지화된다는 투어리스티파이(touristify)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합성어로 주거지가 관광지로 변하면서 각종 소음과 쓰레기들이 발생하고, 관광객들의 등쌀에 못 이긴 거주민들이 이주를 하거나 관광객들을 거부하는 현상을 뜻한다."(p.154, p.156)
이곳에 야기된 문제점들만 해결한다면 사람과 골목이 소통하는 골목길, 이곳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과 이곳을 거니는 관광객들의 삶의 궤적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원체 좁은 길이라 큰 상점은 엄두도 못 냈고 싼값에 배를 채워주는 국밥집과 선술집, 떡집들이 들어섰다."(p.294)
"피맛골을 없앤 건 자본이었다. 하지만 사라진 피맛골의 기억을 되살린 것 역시 자본이다. 역설적으로 골목을 죽이고 살리는 것을 자본이 좌지우지한 셈이다."(pp.297~299)
마지막으로 피맛길. 이곳은 서민들의 추억이 가장 많이 담긴 곳 중 한 곳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곳으로 배고 푼 이들의 배를 채워주던 곳.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이 곳곳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자주 이용했던 곳도 지금은 사라졌다. 친구들과 모여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던 곳, 재개발로 인해 없어져 버린 곳. 이곳에서 만들고 쌓았던 추억들이 몽땅 없어졌다고 생각을 하니 비참한 심정만이 가슴에 남는다. 재개발에 의해 없어져 버린 곳, 자본에 의해 좌우된 다는 것이 서글퍼지고 비참한 생각까지 든다. 해방촌, 충무로 인쇄골목, 문래 창작촌, 동묘 벼룩시장, 락희거리를 소개하지 못했지만 이곳 역시 인간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피난민이 몰려들어 판잣촌을 짓고 살았던 때도 있고, 재개발로 인해 몸살을 앓는 곳도 있고, 일제강점기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곳 등 골목은 이 모든 것을 품었다. 지은이가 에필로그에서 골목을 이렇게 표현했다.
"골목은 어느 동네를 가든 그 모양과 빛과 냄새와 소리가 비슷해서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그리운 기억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 그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아서 마주하는 골목마다 각기 다른 과거의 시간으로 아무렇게나 내려놓고는 떠나버린다. 세운상가는 1988년과 1999년으로, 명동은 2010년으로, 그리고 광장시장은 2019년으로…. 서울의 골목들을 걷고 또 돌아 나오며 그리운 사람들과 잊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p.317)
2021. 6. 22.
삶의 추억을 담은 골목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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