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선
세 가지 시선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가의 야심작, 역작이라고 평할 만큼 심혈을 기울여 쓴 소설이라고 하겠다. 물론 나는 김금희 작가의 글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로 인정한다. 그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이런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첫째, 그의 시선은 따뜻함(인간의 시선)이 스며있다. 전체의 작품 속에 관통을 하고 있는 핵심이라고 할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따뜻함을 갖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이번 작품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 나오는 주인공 강영두도 마찬가지다. 그의 시선은 ‘증오’보다는 ‘용서’와 ‘애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기위해서 석모도를 떠난다. 서울로 유학을 온 영두는 누명을 뒤집어쓴다. 리사와 그의 친구에 의해서. 학교까지 그만두고 석모도로 돌아온 것을 보면 영두는 분명히 증오의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다. 사람에게 입은 크나큰 상처와 배신은 특히 성장기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 직접적인 용서는 아닐지는 몰라도 리사에 대한 간접적인 용서를 하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안문자 할머니와 리사, 영두와 은혜, 산아와 스미라는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워하기보다는 용서와 애정의 관계로 다시 회복됨을 볼 수 있었다. 김금희가 인간을 보는 시선 자체가 ‘따뜻함’을 동반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두 번째로 공간의 시선에 중점을 두었다. 석모도에서 서울로 공간이 이동된 다. 김금희 작가는 이야기의 공간을 왜 이동시켰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소설을 읽는 내내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아직도 궁금증이 머리 한편에 남아 있다. 영두가 서울로 오기 전 그의 어린 시절은 석모도에 대한 추억이었다. 그러나 서울로 공간적 시선이 바뀌면서 그의 추억은 조금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육체적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도 같이 한다. 어린 시절 석모도에 대한 추억이 유아적인 것이었다면 잠시나마 서울에서 쌓았던 추억은 다소 성장한 추억이었을 것이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작은 섬에서 만났던 사람들보다 낙원하숙에서 만났던 사람들, 작은 공간이었던 석모도보다 큰 원서동이라는 공간에서 쌓을 수 있었던 추억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영두와 순신과 연애를 하는 장면. 한 공간에서 리사와 같이 생활하면서 느꼈던 기억, 장구를 치도록 도와주었던 유화, 일수를 받으러 다녔던 장면 등등 원서동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장면들이다. 공간 이동을 통해 김금희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소설을 더 깊이 읽어봐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역사의 시선에 초점을 맞췄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창경궁 대온실을 중심으로 한 축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역할을 한다. 창경궁 대온실은 서양식 건축 양식으로 설계된 한국 최초의 온실로 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였다고 한다. 대온실이 만들어진 시기에 맞춰 소설은 이야기를 엮어간다. 왜 이 시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했을까? 그리고 등장한 인물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깊이 고민하면서 읽어야 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역사의 시선’이라는 두 단어는 어찌 보면 매우 거창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김금희 작가가 의도한 목적이 있어 보인다. 소설을 통한 그 당시의 역사적 장면들을 복원했다. 대온실에서 이뤄졌던 인간들의 이야기들 역시 그 장소에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참조한 것도 그 당시 사람들의 온기를 다시 되살려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과거에도 살았고 현재와 미래에도 삶은 계속 이어지기 마련이다. 삶을 이어가는 것에는 인간의 따스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창경궁 대온실에서 만들어질 사람들의 삶 자체를 이야기하려고 했을 것이다. 또한 그 사람들에 의해 현재의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첫 번째 읽을 때에는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집중했다면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세 가지 시선에 중점을 두고 읽었다. 나에게 와 닿았던 것은 인간의 시선이었다. 김금희 소설가가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사람의 온기, 따뜻함이었다. 소설은 인간을 중심으로 엮어가는 글이라고 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엮어가는 이야기의 핵심은 따뜻함, 따스함이다. 인간의 따스한 온기가 빠진 이야기는 죽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김금희 소설가의 작품은 모두 따뜻함으로 가득 배어 있다.
2024년 10월 1일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고 쓴 생각
붙이는 말
글을 마치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공간의 시선과 역사의 시선 부분인데 이 부분 역시 인간의 시선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확장’이라는 개념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김금희 작가는 왜 이 두 가지 시선을 소설에 끼워 넣었을까? ‘회귀 본능과 회복’이라는 두 단어를 생각했다. 영두가 서울로 유학을 갔지만 사람에 대한 상처로 인해 다시 석모도로 돌아온다.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에 회복의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또한 창경궁은 역사의 상흔이 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두를 통해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만든다는 것은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리 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역사적 자료를 살펴보는 과정인데 이것은 회귀본능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만들었기에 회복한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점에 중점을 두고 소설을 읽었다.
* 창비출판사에서 제공해주신 가제본으로 읽고 글을 썼음을 알려드립니다.
* 온라인 서평은 올린 곳은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