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민섭 작가는 좋아하는 진짜 이유
내가 김민섭 작가는 좋아하는 진짜 이유
언제부턴가 김민섭 작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말 진심으로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는 김민섭 작가를 페이스북에서 만난 것이라 아니라 도서관 책장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고르다가 만난 작가다. 그의 처음작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만나고 나서 ‘참 문장을 진솔하게 쓰는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시간강사 그리고 대학을 나올 때까지 그 안에서 그가 겪었던 것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아픔과 서러움을 참고 문장으로 써낸다는 것이 웬만한 용기 갖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것인데 그는 진솔한 문장으로 표현을 했다. 그 이후 나온 『대리사회』, 『아무튼, 망원동』, 『훈의 시대』, 『경계인의 시선』 까지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읽어나갔는데 역시 내가 예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진솔하게 써내려간 글들이었다(그 외에도 그의 작품들이 더 있으나 아직 읽어보질 못해서 말을 할 수는 없고). 그리고 그의 작품들 속에서 그의 선함이 묻어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유인데 사람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어서다. 이 말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에게서 희망을 배우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내가 김민섭 작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이번 신작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통해 말해보려고 한다.
첫째, 그에게서 ‘선함’이 묻어 있다는 것을 서두에서 말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는 4부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에서 헌혈행위는 그에게서 ‘선함’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나는 왜 선한 사람이 되고자 했을까”(7쪽)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묻지 않아도 그의 행위는 선하다는 것이 이 책 곳곳에 나타나 있다. 고등학교 때, 현역으로 복무할 때 헌혈행위를 <허삼관 매혈기>에 나오는 주인공 허삼관처럼 ‘매혈’이라고 평가절하 했지만 어느 누구나 할 수 없는 ‘선한행위’였다. 영화표를 받기 위한 것이라 했을지라도 ‘나의 피가 다른 사람에게 쓰일 수 있겠구나’라고 느꼈을 때 자신이 ‘사회적인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피를 통해 타인과 연결될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은 그의 선함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책에서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부분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것은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헌혈의 집에서 받은 여러 장의 ‘소녀시대 브로마이드’가 있었다. 헌혈을 하고 받은 것을 학비에 보태기 위해 중고나라에서 40만원을 받고 거래한 적이 있었다고 밝힌다. 이 행위는 부끄러운 행위(매혈행위)였다고 말하는 용기에서 그의 선함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헌혈을 하기 전에 자장면을 먹고 성분헌혈을 한 적이 있었다. 혈장의 색이 너무 탁하는 간호사의 말. 간호사는 이번 헌혈은 폐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이유를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헌혈함에 있어서 착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 한다고. 나의 나쁜 피가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아야 함을. 4부에서 에피소드가 한 가지 더 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의 일이다. 외출을 한 날이었다. 버스를 탔는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하필 중국인이었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침을 하는 여성에게 보인 나의 행동은 적절한 행동은 아니었다. 혹시나 코로나가 나에게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중국인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증오와 혐오를 전달한 것 같다고.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 반성할 줄 아는 사람. ‘선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나와 타인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재료임이 틀림없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그의 문장에는 사람의 온도가 풍긴다는 것이다. 사람의 온도는 36.5다. 그의 문장에서 사람에 대한 배려나 따스한 온기가 품어져 나온다. 어려서부터 그는 아버지로부터 ‘인간에 대한 소중함’을 배웠다. 학교에 가기 위해 아버지의 차를 탔다. 가는 도중에 택배 차와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를 낸 책임은 전적으로 택배기사에게 있었지만 책임을 묻지 않고 그냥 돌려보낸 적이 있다. 아버지는 택배기사를 걱정한 것이다. 자신의 연약한 시절을 생각했다. 인간 모두에게는 연약한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사고가 난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지켜 온 삶의 태도에 충실했다. 자신이 피해자인 것을 알면서도 타인의 태도와 처지와 입장을 살피고 그에 따라 그를 대했다. ~~~ 타인의 처지에서 사유하는 일,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타인의 마음과 같게 만드는 일, 그 동정의 감각이 결국 우리를 연결해 낸다.”(p.140, p.141)
문장의 온도가 배어 있는 구절을 몇 개 인용해 본다.
“몸의 항체는 연구하고 개발해 낸 백신으로만 얻을 수 있다.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항체는 모두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고 그렇게 타인을 감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우리가 바이러스를 이겨 내는 데 백신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그 마음의 항체는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말과 태도로써 누구나 타인에게 접종할 수 있다. 원더키디의 세계에서도 가장 무서운 무기는 모두가 손에 넣고자 한 ‘신비한 메달’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이 보낸 다정함이 결국 모두를 구원해냈다.”(pp.195~196)
“~~~ 하는 말들을 적당한 온도로 전해 왔다. 우리는 선생님과 회원님이면서 그 시간에는 잠시 친구가 되었다. 그는 몸만큼이나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덕분에 좋은 트레이너란 몸의 근육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함께 북돋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p.207)
″그러고 보니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할 때 나를 가장 북돋웠던 말도 “강의실에서의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여요. 저도 공부해서 모교에서 강의하고 싶어요.”하는 것이었다. 타인을 움직이는 일은 거대한 한 세계를 움직이는 일이다. 그의 삶을 들어 올린 동력 중 하나가 나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가 어느새 내 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은 감격스럽다. 그게 단순한 선언이라고 해도 그렇다. 그들과 만나는 건 몇 백 그램의 체중을 감량하는 것보다도 훨씬 즐거운 일이었다.″(p.227)
문장을 감상해보시라. 내가 김민섭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사람을 대할 때의 온기, 주는 편안함, 안온함, 배려가 품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나는 이 작가를 좋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온도 36.5도를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준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끝으로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맞다. 김민섭 작가가 가지고 있는 가진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에게 품고 있는 희망이다. 희망을 배우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느슨한 연결의 방식, 무해한 방식의 연결로 말이다.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 ‘고소장 프로젝트’, ‘몰뛰작당 프로젝트’를 통해서 사람에게 품어야 할 것은 ‘희망’이라는 것을 배웠다. 특히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를 통해 93년생 김민섭씨에게 비행기 왕복권을 준 지은이, 숙박비를 지원해 준 고등학교 선생님, 1일 버스 승차권을 주신 분, 졸업전시 비용을 후원한 카카오 등등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님을 안다. 그저 93년생 김민섭씨가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바로 연약한 시절에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고소장 프로젝트’에서도 페이스북 친구들의 응원으로 용기를 얻어 고소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약자(여성, 청년, 노인, 장애인)들은 당하고 만다.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 피의자도 앞으로 이런 무례함을 범하지 않게 하려는 조처였다고. ‘무례함의 비용’을 치르게 하기 위한 과정에서 페이스북 친구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용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희망을 심어준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사람에게 희망을 품게 하고 전달해준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책 제목이다. 보기만 해도 훈훈하고 흐뭇하다. 소리를 내어 읽어보면 벌써 내 앞에 ‘희망’과 ‘타인의 안온한 마음’이 와 있음을 느낀다. 에필로그의 나온 문장으로 끝을 맺어볼까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연결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 이건 우리가 그동안 ‘연대’라고 불러온 것보다 느슨한 형태이지만 더욱 단단할 수 있다. 우리를 단단한 쇠사슬로 묶어 내고 바깥을 투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가느다랗고 느슨한 그 선들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건 보다 다정한 방식의 연결이면서 무해한 방식의 연결이다.”(pp.262~263)
2021. 6. 28.
붙이는 말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전에 읽었던 김중미 소설 《곁에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 소설의 제목 ‘곁’이라는 한 단어에서 나오는 말의 의미가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의 문장이 내포하는 뜻과 일맥상통한 것이 있음을 느낀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타자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