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의 눈으로 본 서울
서양인의 눈으로 본 서울
이 책은 서양인의 눈으로 본 서울을 그리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맨 처음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고를 이유는 ‘골목 골목 재미있는’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서다. 서양인이 서울의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체험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읽어본 후에 골목에 대한 얘기는 별로 다뤄진 것이 없었다(약간 다룬 부분도 있지만 골목에서 체험한 이야기는 아니다). 외국인 즉 이방인이 낮선 도시, 서울에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체험했던 부분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서울을 ‘제2의 고향’이라 말할 정도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과연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매력이 묻어나는 도시일까?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일까? 내가 아는 서울은 그리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었다. 그래도 1990년대 이전의 서울은 지금보다 나은 곳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돈과 권력이 집중된 곳, 1000만의 대도시(2020년 기준 970만 명 정도), 강남과 강북의 빈부격차,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곳, 그리하여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곳이 서울이다. 이런 슬픈 이야기들이 곳곳에 무수히 많은 동네가 서울이라는 곳인데 지은이의 시선에는 서울이 명품도시인 줄만 아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하기야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속속들이 내부사정을 모르니까. 그렇다면 자자가 본 서울은 어떤 모습들을 보았는지 어떤 시선이 담겨 있는지 잠깐 살펴보자.
"필운동은 이제 나의 집이다. 내 고향 버지니아주의 옛 이웃과는 전혀 다른 고양인 것이다. “아늑하다”라고 따라 해볼래요? “매혹적이다”라고 따라 해볼래요? 찰깍! 찰깍! 찰깍"(p.13)
"정말로 괜찮은 식당은 반드시 깜빡거리는 간판이나 화려한 외관 혹은 무성하고 싱싱한 잎 등으로 치장하고 있지 않다. 종종 그렇듯이 정말 맛있는 식당들은 보통 두 번 눈길을 줄 것 같지 않을 그런 작고 소박한 식당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 중 하나는 경복궁 근처 좁은 골목길에 있는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없게 숨어 있는 식당이다. 이곳의 식당은 반찬을 아끼지 않고 제공한다. 김치부터 냉국까지, 정말 푸짐하게 잘 차려진 반찬을 보게 될 것이다."(p.17)
첫째로 저자는 서울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을 한다. 이 책 맨 처음 소개한 글 「우리 동네 구경 오세요!」에서부터 서울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이유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필운동에서 터전을 잡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즉 식료품점 아줌마, 과일가게 아저씨, 신문 가판대 아줌마, 종이박스를 수거하는 아저씨에 대해서 말문을 연다. 한국의 서점, 식당, 재래시장, 커피숍, 서울에서 지은이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내가 좋아하는 김씨」), 택시 운전사, 안전을 지켜주는 경찰들, 모르고 거스름돈을 받아가지 않았는데 다음 올 때에는 거스름돈을 돌려주었던 아줌마, 전혀 방해를 받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여관들, 한국의 요와 베개는 ‘휴식의 소리까지 전달해준다’고 표현할 정도로 한국 잠자리 문화를 극찬했다. 한국의 수도 서울과 사랑에 빠진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람의 정이 가득한 곳이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서울의 노래 ABC」의 글은 지은이의 서울 사랑이 극대화 된 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번째로 비판한 부분도 더러 있다. 「골목탐험」 글에서는 한국의 주차문화와 거칠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말했다. 폭이 좁은 교차로에 주차한 차들, 주차된 차들이 즐비한 교차로에서 거칠게 운전하는 레미콘 기사에 대한 운전 솜씨가 좋다고 비꼬아 말한다. 「젊은이들이여, 천천히! 천천히」에서는 ‘한국젊은이들의 성질 급함’, ‘빨리빨리 신드롬’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저자 자신의 젊은 시절을 예로 들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 매우 서둘렀다고 한다. 성과를 내기위해서 서두르는 것은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리고 병을 키운다. 심장병, 심지어는 자살까지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 깊게 생각하고, 더 천천히! 신중하게 결정하고, 움직여라. 여유를 갖고 말이다. 청년들이여.”
비판하는 부분이 또 한 곳 있다.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부분인데 생각해 볼 점이 있는 것 같아서 나름 문장을 인용해 봤다.
"한국에서 무당의 역사는 미국보다 조금 더 오래 되었지만 ‘중개자로서 돈을 벌어보자’는 발생 동기는 기본적으로 같다. 한국의 무당은 돈과 관련하여 조금도 감추는 것이 없다. “짜게 굴면 굿 못하지!”라고 무당이 말하면 구경꾼들은 냉큼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꺼내주어야 하니까 말이다. 글쎄, 10만 원을 버는 방법으로는 참 쉬운 것 같다. 그렇지만 무당의 기교는 너무 빤히 들여다보여서, 그냥 척 보기에도 굿판에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한다기보다 단순히 미신의 일종으로 느껴진다."(p.159)
"물론 이런 것들로 한국을 조롱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한국은 매력적이고, 나는 이곳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사실 미국 사회에는 이와 유사한 ‘무당 속임수’가 넘쳐나고 있다. 단지 나는 초자연적인 힘이 일련의 상황에 개입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무당과 굿은 단지 쇼에 지나지 않는다."(p.161)
한국 무속인들의 ‘굿’은 한 나라의 고유 정신문화의 영역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무속인, 돈에 노예가 된 무속인의 천박한 태도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어느 나라에서나 얄팍하고 천박한 무속인들은 존재한다. 저자가 사랑에 빠진 서울만큼은 얄팍한 무속인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적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와 나의 시각 차이가 한 군데 정도 다른 곳이 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저자의 글 「지혜로운 한국의 상류층」에서 서울의 상류층은 ‘부를 지혜롭게 다룰 줄 안다’고 평가했다. 물론 부를 지혜롭게 다룰 줄 아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지 않다. 한국 부유층들은 그리 올바른 사람들이 아니다. 미국 부유층과 똑같거나, 오히려 더 형편없다. 부(돈)를 어떻게 써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를 쌓을 줄만 알았지, 가치에 대해서는 더욱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저자가 이삼 년 전에 만난 부유한 사람은 부에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상류층 소위 돈푼께나 갖고 있다는 부류들은 대부분 부의 가치를 모르는 돈에 노예가 돼버린 사람들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재벌’이라는 단어가 왜 나왔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데이비드 리치라는 이름을 가진 저자는 환경공학자며, 화산전문가, 17권의 책을 쓴 작가다. 10년의 서울 생활은 무지무지 행복하고 아름다웠나 보다. 그의 서울 극찬은 이 책 안에 가득가득하다. 서울 거리를 걸으며 그가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도 지극히 특별했나 보다. 서울에서 만든 예쁜 추억들을 영원히 간직하기를 바랄 뿐이다.
"서울은 깨끗하고 다채로우며, 빠르게 돌아가면서도 친근한, 21세기와 전통이 공존하는 곳이다. 위대한 도시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p.133)
2021년 5월 28일
서울에서 거주했던 시절 추억을 생각하며
붙이는 말
저자가 한글로 직접 쓴 글인지 아니면 한글로 번역한 책인지는 알 수 없다. 번역자의 이름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이 책에 나온 글들은 상당히 잘 써진 글들이다. 문장력이 대단하다. 우선 글들이 쉽게 잘 읽혀진다.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도 서울 곳곳을 잘 설명하고 표현했다. 서울 안내서로 이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아마 전문가가 썼다면 생기발랄한 표현은 쓰지 못했을 것이다.